"아들열심히 일하고 술은조금만 마셔 사랑해"
얼마 전 칠순을 맞으셨던 아버지께서 요즘 휴대폰 문자에 잔뜩 재미를 붙이셨다. 요즘 어르신들 휴대폰 문자 보내는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께서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요즘 들어오는 문자를 보면 나는 가끔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기껏해야 사랑해, 화이팅, 기운 내자, 일찍 오니 정도의 단문만 보내시던 아버지께서 비록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좀 틀렸다고는 해도 이제 어엿한 문장을 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 건, 얼마 전 사위(내게는 매제)가 쓰다가 넘겨 드린 프라다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아버지는 대략 5년전 쯤 부터 휴대폰을 사용하셨다. 처음에는 바 타입의, 부가 기능은 일체 없는, 통화만 되는 휴대폰을 쓰셨는데 이것이 일년 정도 지나니까 소리가 잘 안들리고 볼륨 조절이 안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르신 쓰실 거라고 너무 막 해드린 것 같아서 소위 CEO폰이라고 광고했던 폴더형 애니콜 휴대폰을 다시 해 드렸는데, 나름대로 130만 화소 카메라와 mp3 그리고 만보기 기능을 갖춘 당시로서는 최신형 휴대폰이었다.
사실 밋밋한 폰을 쓰시다가 나름대로 최첨단 폰을 쓰시게 된 아버지는 카메라와 문자 기능에 꽤 흥미를 보이셨다. 그러나 아무래도 조작법이 어려웠던 탓인지, 영 적응을 못하셨다. 한 번은 초등학교 다니는 손녀 딸을 찍는다고 휴대폰을 들이대셨는데, 몇 번의 특훈을 거쳐 카메라 기능을 실행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촬영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OK 버튼을 눌러 촬영을 해야 하는데, 그만 종료 버튼을 누르셨던 것이다. 찍는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잠시 후 휴대폰 꺼지는 소리가 들려서 온 가족이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아버지는 휴대폰을 카메라로 쓰는 일 따위는 포기하셨다.
반면 문자는 좀 달랐다. 손녀 딸과 주고 받는 문자 재미를 느끼고 싶으셨던지, 종이에 키 패드 누르는 방법을 적어 가지고 다니시면서 익힌 결과 간단한 낱말을 보낼 수 있게 되셨다. 딸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적어드린 처음 방법은 '사랑해'를 입력하려면 1을 몇 번 누르고 2를 누르고…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까 키보드의 원리는 그냥 두고, 특정 글자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린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익숙해져 두 단어, 세 단어까지 입력하는 경지에 이르시게 됐지만 항상 보내시는 문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키를 자꾸 눌러야 하는 입력 과정이 어르신들에게는 영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이었을 게다.

터치 인터페이스를 채택한 프라다폰. 키패드가 없어 처음엔 좀 낯설지만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자료출처 : http://www.pradaphonebylg.co.kr/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자료출처 : http://www.pradaphonebylg.co.kr/
사위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폰을 바꾸면서 쓰던 프라다폰을 아버지께 드렸을 때, 처음 아버지는 기껏 휴대폰 사용법을 익혔는데 번호판도 없는 휴대폰을 어찌 쓰냐며 절래 절래 손을 흔드셨다. 그러나 지금 쓰는 폰도 꽤 낡았고, 어차피 새로 폰을 곧 해야 될 상황인데다가 집 식구들의 강력한 권유로 프라다폰을 접수(!)하셨다. 처음부터 걱정이 태반이었고 사실 부추긴 가족들도 전혀 새로운 방식의 폰을 쓰시게 된 데 대해 잘 쓰실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다.
프라다폰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필기 인식 데모
자료출처 : http://www.pradaphonebylg.co.kr/
자료출처 : http://www.pradaphonebylg.co.kr/
집 안 식구들 휴대폰을 이것 저것 만져보면서 웬만한 휴대폰의 조작법은 줄줄 꿰고 있는 딸 아이가 이번에도 할아버지의 휴대폰 교사로 나섰다. 이럴 때 이걸 키시고요, 이걸 누르시고, 이렇게 하시면 되요. 이건 다 그림이라 더 쉽네. 그냥 화면을 손가락이나, 여기 이 펜으로 누르시면 돼요. 터치 패드에 나온 그림을 하나씩 누르면서 기능을 익히는 것이 메뉴를 눌러 들어가는 기존 방법보다 훨씬 쉬웠던 탓일까. 다들 우려했던 바와 달리 아버지는 금새 휴대폰 사용법을 익히셨다. "그림만 보면 이거 대춤 뭐하는지 알겠네. 이거 쉽다~" 게다가 프라다폰에 내장된 필기 입력 방식과 키보드 입력 방식을 알게 된 후 아버지의 문자는 그야 말로 '일취월장'했다.
누가 어르신들은 통화만 되는 기본적인 폰을 사드리면 된다고 했을까. 한정된 화면에 더 많은 정보를 담고,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메뉴는 왜 젊은이들만의 전용이어야 하는 것일까. 더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휴대폰을 쓰기가 더 불편한 어르신들부터 먼저 쓰시게 하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아버지께서 프라다폰에 순식간에 적응하고 장문의 문자를 날리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내심 어머니의 폰에 신경이 쓰인다. 어머니도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폰에 욕심이 나시는지, 어디서 하나 더 구할 수 있으면 구해보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신다. 거기에 할아버지 가르쳐 드리면서 터치 방식에 푹 빠져버린 딸 아이도 슬슬 휴대폰 바꿔달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마 조만간 가족 모두 터치 방식의 휴대폰으로 기변(!)해야 할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더 쉽고, 더 편리한 폰으로 말이다.
기술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편리함이 따른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시한 많은 폰들은 다양한 기능을 구현한다는 명분 하에 점점 더 쓰기 어렵고 복잡해졌다. 그러다 보니 있는 기능도 다 쓰지 못하는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개발자들도 그런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에 터치와 GUI라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고, 좀 더 편히 쓸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출시된 터치웹폰만 보더라도 프라다폰보다 진일보한 인터페이스를 갖추었다. 마치 컴퓨터와 바탕화면과 같은 터치웹폰의 바탕화면에서 드래그&드롭으로 전화를 걸고 손가락으로 터치하면서 인터넷으로 접속하는 한편 종이에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리듯 화면에 쓸 수 있게 됐다. 가장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인 종이와 펜의 개념을 그대로 도입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프라다폰에서 시작해 터치웹폰 등 최근 출시된 터치폰에 적용되기 시작한 터치와 GUI 방식의 인터페이스. 흔한 유행, 단순히 쉽고 재미있는 조작법을 제공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인터페이스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세상 수많은 부모님들의 문자가 자식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면 좋겠다. 기술이란 원래,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일테니까.
posted by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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